본문 바로가기

그곳에 가고 싶다

‘다채로운 길’이 자랑, 지리산 둘레길


'지리산 둘레길'은 지리산 사람들이 다녔던 길과, 다니고 있는 길을 잇고 보듬은 길이다. 마고할미의 전설이 서린 지리산, 국립공원 1호 지리산의 둘레길…. 이 길 곳곳에 한국전쟁과 왜구의 침입 흔적이 남아 있다. 무엇보다 산업화의 뒤안길에서 묵묵히 농업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삶을 고스란히 간직한 길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무한 경쟁과 질주하는 물질문명에 눈멀고 귀먹어, 향락과 소비가 마치 최고의 미덕처럼 되어버렸다. 이런 일상적인 삶을 되돌아보자며, '온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평화가 되자'는 생명평화운동의 시작점에서 제안된 순례길이 지리산 둘레길이다. 2007년 지리산운동의 일환으로 사단법인 '숲길'이 만들어졌고, 지리산 둘레길을 잇고 보듬는 일이 시작되었다. 



지리산 한 바퀴 돌며 만나는 길과 유적들 

사라진 길을 찾아내려고 떠나는 여정은 간단치 않았다. 세대에 걸쳐 장보러 다닌 길, 이웃과 소통하던 길, 대처로 가기 위해 마련된 길들이 묻히고 버려진 데다 공동의 길이 사유화되어 새로 찾아 보듬는다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도 인심은 남아 있어서 마을 사람들에게 동의를 구하고 개별 소유자를 만나 설득하며 찾은 길들이 농경지를 지나는 길, 마을을 지나는 길이다. 

장장 700여 리(약 280㎞)에 달하는 지리산 한 바퀴를 돌아가다 보면 숲길, 농삿길, 시멘트길, 임도로 불리는 숲길, 아스팔트길을 걸어야 한다. 또 그 길가의 마을과 마을숲, 당산나무, 석장승 등 지리산 자락의 문화유산도 만난다. 때로는 가파른 고갯길을 넘어야 하고, 한참 지나도 민가를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는 지루한 길도 있다. 걷다보면 '이게 무슨 길이야'라며 투덜대기도 하고, 땡볕 속을 걷다가 다시 돌아가버릴지도 모른다. 

'지리산 둘레길'은 길을 걸으려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보이는 것도 다르고, 마음의 크기에 따라 느끼는 것도 다르다. '걷기'는 결국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자신의 내면과 마주 대하는 시간이다. '지리산 둘레길'을 걸어본 사람들은 그 길에서 살아온 시간을 반추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걷기는 인류가 받은 가장 큰 선물이다. 걷는 행위를 통해 인간다운 삶을 찾아야만 한다. 

지리산 자락은 관광단지로 개발된 지역을 제외하고는 마땅한 숙식 장소가 없다. 여정을 계획하면서 미리 어디에서 쉬고 머물지를 결정해야 한다. 남원시 인월면에 있는 사단법인 숲길의 '인월센터'를 통해 정보를 얻을 수도, 해당 지자체에 문의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좋은 법은 역시 자신의 처지에 따라 계획을 잡는 것이다. 지리산을 찾는 '뚜벅이'들은 대부분 마을 민박을 이용한다. 다행히 마을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산마을에서도 단잠이 가능하다. 





편리와 편익을 좇지 않는 둘레길 걷기 

'지리산 둘레길'에는 순서가 없다. 그래서 일부 뚜벅이들은 1코스·1구간의 개념이 없어 혼란스럽다고 투정부린다. 그러나 '지리산 둘레길'은 여전히 편리와 편익을 좇을 생각이 없다. '지리산 둘레길' 구간 개념은 하루 정도 피곤하지 않을 만큼의 여정을 감안해 구분했다. 특히 대중교통이 들고나는 곳을 중심으로 나누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걷기 여행의 출발선이라는 믿음에서다. 각 구간은 마을과 마을 이름으로 연결된다. 주천~운봉, 운봉~인월, 인월~금계…. 따라서 자신의 여정에 따라 반대로 발걸음을 내디딜 수도 있다. 

지리산 '이야기 표지판'과 '이정표'는 모두 나무로 만들었다. 이야기 표지판은 현재 주천~수철 70㎞ 구간에 서 있고, 장승처럼 생긴 이정표는 전 구간에 버티고 있다. 장승의 날개는 방향을 나타낸다. 검정과 빨간색으로 방향을 구분해놓았다. 검정 방향을 따라 한 바퀴 돌면 자신의 출발지로 돌아올 수 있다. 현재 '지리산 둘레길'은 전북 남원시 주천면에서 경남 산청군 수철마을까지 70㎞가 개통했는데, 5월13일 두 길이 새로이 열린다. 경남 산청군 수철마을~경남 하동군 악양면 대축마을 89.2㎞ 구간과 전남 구례군 밤재~구례군 오미리 운조루를 잇는 51㎞이다. 이제 더 깊고 고즈넉하고, 더 수려하고 멋진 숲 사이로, 고개 너머로 걷기 여행이 가능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