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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고 싶다

야생화가 지천, 바람이 만발한 태백의 시원한 여름을 만나다

만항재-함백산-매봉산, 백두대간을 따라 가는 여행

  
▲ 만항재 오르는 길 만항재는 우리나라의 도로 가운데 가장 높은 곳을 지나는 도로입니다.
ⓒ 문일식
만항재

만항재 가는 길은 한낮 여름임에도 신선한 기분이 듭니다. 그야말로 하늘로 오르는 길입니다. 길고 긴 활주로를 타고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길입니다.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상갈래 삼거리에서 시작되는 414번 지방도는 만항재를 넘어 태백시내로 조용히 이어지는 길입니다. 영월을 거쳐 사북과 고한까지 이르렀지만 알게 모르게 해발 800m를 훨씬 넘어섰습니다. 1330m 만항재까지 오르는 데는 큰 굽이가 없는 대신 오로지 가파른 오르막길만 연이어 나옵니다.

 

  
▲ 추전역에 세워진 '제일 높은역'표지석 추전역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역입니다.
ⓒ 문일식
추전역

만항재를 오르는 그 짧은 여정은 하루도 모자랄 정도입니다. 8km 정도 이르는 길에는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불상을 전혀 모시지 않은 절) 중 하나인 정암사를 만날 수 있고, 은대봉과 금대봉을 지나 매봉산에 이르는 백두대간 트레킹을 할 수도 있습니다. 둔중한 산에 막힌 철길은 정암터널을 지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역인 추전역에 이릅니다.

 

414번 지방도를 오르며 만나는 만항마을은 전형적인 탄광마을이었습니다. 1960년 삼척탄좌가 개발되면서 발전하게 되지만, 결국 이곳도 세월의 흐름을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탄광이 문을 닫고,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가기 시작하자 마을엔 폐가가 늘어나고 초라해져 갔습니다. 그나마 요즘 닭볶음탕 맛이 입소문을 타면서 한적한 만항재를 넘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닭요리를 맛보기 위해 멀리서도 찾아올 정도라 합니다. 지금은 몇몇 허름한 닭요리집이 간간히 지나는 여행객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1330m 만항재 정상...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을 지나는 도로 위에 만항재가 있습니다. 만항재는 강원도의 태백, 고한, 정선 세 군이 마주보고 있습니다. '산상의 화원 만항재'라 적힌 정선군 표지판이 가뜩이나 높은 고개 정상에 우뚝 서 있습니다. 만항재는 백두대간이 이어지는 곳입니다. 남쪽으로는 태백산을 지나 소백산으로 이어지고, 북쪽으로는 피재라 불리는 삼수령을 지나 동해의 두타산, 청옥산을 지나 대관령으로 이어집니다. 만항재에서 한낮의 뜨거운 태양이 가장 먼저 이르면 그만큼 더울 법도 한데 만항재 정상은 서늘하기 그지 없습니다.

 

  
▲ 주황색 이쁜 빛을 지닌 동자꽃 군락 만항재 야생화 탐방로에서 주황색 동자꽃 군락을 만났습니다
ⓒ 문일식
만항재

만항재는 지금 야생화의 천국입니다. 다소 인위적인 구성이긴 하지만 고한 방면으로 비탈면에 잡목을 없애고, 야생화 탐방로를 만들었습니다. 인공조림된 침염수림을 따라 자생하고 있는 야생화들이 가득합니다. 연분홍빛 둥근이질풀과 주황빛 동자꽃, 연보라빛 노루오줌들이 자기 세상인 양 무리지어 피어났습니다. 간혹 보이는 '점순이' 말나리와 부드럽게 휘어진 큰까치수염까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자생식물이 지천입니다. 가히 '산상의 화원'이라 할 만합니다.

 

  
▲ 만항재 야생화 탐방로 만항재 정상에서 고한방면의 비탈길에 야생화 탐방로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 문일식
만항재

발 끝으로 묻어나는 폭신폭신한 촉감도 참 좋습니다. 군데군데 벤치를 놓아두어 호흡을 가다듬으며 산림욕을 즐기기에 적당합니다. 야생동물도 많은 모양입니다. 멧돼지가 영역을 표시하면셔 파헤쳐 놓은 곳엔 안내표지판까지 세웠습니다. 신이 난 아이들은 뛰어다니고, 손을 맞잡은 노부부는 천천히 숲길을 걸어 옵니다. 숲 속에 몸을 묻고 벤치 위에 잠을 청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저 한 편 벤치에 누워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 만항재 정상 숲에 놓여진 벤치 한여름인데도 시원함이 가득한 숲 속입니다.
ⓒ 문일식
만항재

만항재 쉼터 건너편에 침엽수림 아래로 벤치가 놓여 있습니다. 시원한 바람이 들진 않지만 숲이 만들어주는 그늘 만으로도 편안한 휴식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입니다. 숲 속에는 야생화가 지천인데다 벌과 나비들이 어울려 천상의 화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한참을 벌과 나비와 씨름을 합니다. 나비는 눈치를 보느라 앉았다 금세 날아가기 일쑤고, 벌과 등에는 옆에서 얼쩡거리든 말든 전혀 신경쓰지 않습니다. 잠자리는 어찌나 많은지 어른거리는 걸 쫓아내느라 바쁩니다. 결국 야생화를 찍은 사진 속에는 점처럼 박혀있는 잠자리 투성이입니다. 무척 얄미운 존재입니다.

 

  
▲ 백두대간의 하나인 함백산 정상 함백산 정상에서 사방이 시원하게 조망됩니다.
ⓒ 문일식
함백산

만항재에서 함백산을 올라봅니다. 또다시 200m를 넘게 올라야 합니다. 함백산 정상까지는 가파르긴 하지만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함백산 정상은 1570m로 남쪽에서는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 계방산에 이어 6번째로 높은 산입니다. 그렇게 높은 산을 힘 안들이고 오를 수 있는 것은 함백산 정상에 군통신시설과 무선기지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급하면 급한 대로 차를 이용해 올라도 되지만 시간이 넉넉하다면 쉬엄쉬엄 올라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함백산 정상까지 여기저기서 만날 수 있는 야생화가 지천이고, 기분 좋은 숲길도 이어지기도 하며, 하늘과 맞닿은 굽은 산길도 오릅니다.

 

  
▲ 함백산 정상에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바람이 항상 머무는 곳, 함백산 정상입니다.
ⓒ 문일식
함백산

함백산 정상, 하늘을 휘젓는 바람이 한껏 머물다 갑니다. 바람이 어찌나 사나운지 사람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흩트려 놓고, 산 정상 척박한 곳에 뿌리를 묻고 사는 식물들도 심술궂게 뒤흔듭니다. 식물들은 그런 바람의 심술을 넉넉하게 받아들입니다. 노란 기린초는 바위 틈 속으로 낮게 숨어들고, 갸날픈 줄기를 가진 풀들은 바람이 지나는 대로 이리저리 흔들리며 춤을 춥니다. 바람이 어지러이 불어대는 함백산 정상에도 생동감있는 자연이 그렇게 숨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함백산 정상 표지석에 오르면 사방을 조망할 수 있습니다. 장쾌한 산의 능선과 첩첩산중이 실감나게 굵직굵직한 산들이 하늘 아래 겹겹이 서 있습니다. 만항재로 이어지는 길은 마치 숲 속으로 미끄러지듯 숨어드는 뱀처럼 구불구불 이어져 있습니다. 만항재와 화방재를 거쳐 태백산이 보이고, 백두대간은 굵직한 선을 그리며 남쪽을 향하고, 은대봉과 금대봉을 거치며 매봉산의 풍력단지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입니다. 함백산 아래쪽으로는 오투리조트(구 서학리조트)가 대자연을 생채기 내고 있습니다. 고한 읍내와 하이원리조트도 발 아래로 멀리 보입니다.

 

  
▲ 구와우 입구에서 바라본 뭉게구름 푸른하늘에 하얀 구름이 일품인 멋진 날이었습니다.
ⓒ 문일식
만항재

태백시내에서 35번 국도를 따라 강릉, 동해 방면으로 가다보면 태백 고원자생식물원을 만납니다. 해마다 해바라기축제가 열리는 곳입니다. 드넓은 고원에 하늘을 향해 바짝 고개를 들고 있는 해바라기 군락을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파란 하늘까지 만나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입니다. 해바라기가 피지 않았다는 말에 발길을 돌렸지만, 오늘만큼은 어느 때에도 볼 수 없는 파란하늘이었기에 많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백두대간중 하나인 삼수령 정상에는 매봉산 풍력단지로 이어지는 길이 있습니다. 삼수령은 삼강(한강, 낙동강, 오십천)의 발원지, 즉 비가 내리면 북쪽으로 물이 흘러 한강으로 흐르고, 남쪽으로 낙동강으로 흐르며, 동쪽으로 흘러 오십천을 이룬다 하여 붙여진 지명입니다. 삼척지방 사람들이 난리를 피해 이상향으로 알려진 황지로 피해간다 하여 피재라고도 불립니다.

 

  
▲ 매봉산 풍력단지의 전경 매봉산 오르는 도중 전망대에서 바라본 매봉산 풍력단지
ⓒ 문일식
매봉산풍력단지

매봉산 정상의 산 능선을 따라 태백에서 조성한 풍차가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풍력단지 정상까지 차가 올라갈 수 있습니다. 능선 동쪽으로는 광활한 고랭지 채소밭이 있고, 푸른 빛 넘실대는 하늘 아래로 넓은 연두빛 배추밭과 풍력단지가 시원한 풍경을 선사합니다. 풍력발전단지에는 50m에 이르는 풍력발전기 8대가 줄지어 서 있습니다. 거대한 발전기 아래로 풍력기 돌아가는 소리와 날개가 만들어내는 그림자가 휙휙 지납니다. 소리와 그림자에 긴장이 될 정도입니다. 

 

  
▲ 매봉산 정상의 바람의 언덕 매봉산 풍력단지에는 전망이 뛰어나고 산책을 겸할 수 있는 바람의 언덕이 있습니다.
ⓒ 문일식
매봉산

관리사무소로 쓰이고 있는 네덜란드 풍차는 다소 생경한 모습이긴 했지만, 이쁘고 아담하게 잘 지어놓은 것 같습니다. 함백산 정상에서 봤던 것처럼 시원하고 장쾌한 산자락들이 변함없이 늘어서 있습니다. 바람도 여전합니다.

 

오늘 하루 돌이켜보면 오로지 세가지만 기억에 남습니다. 질리도록 보았던 파란 하늘과 하늘을 뚫고 나온 듯한 눈부신 흰 뭉게구름 그리고, 심술궂은 바람... 바람이 몸을 시원하게 해준다면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은 마음을 시원하게 해줍니다. 태백은 여름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시원한 곳입니다. 몸과 마음까지 시원하고 깨끗하게 해주는 태백은 그래서 더없는 청정자연의 휴식처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