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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이야기

문화부, ‘임정 법통무시’ 책자 전국 중·고 배포

“건국 공로는 정부수립 참여 인물 몫”…헌법과 배치
뉴라이트 단체에 용역…민주주의 모태는 ‘미군정기’

문화체육관광부가 헌법 전문에도 나와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무시하고,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모태를 ‘미군정기’라고 표현한 책을 만들어 전국 중고등학교 등에 3만부가량 뿌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 책은 정부의 ‘건국 60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만들어졌다.

22일 문화부와 일선 학교 교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문화부는 ‘건국 60년’을 맞아 뉴라이트 단체인 ‘교과서포럼’ 소속 교수들에게 용역을 줘 만든 200쪽 분량의 <건국 60년 위대한 국민-새로운 꿈>이라는 책을 지난 10월 말 전국 중고등학교·대학·군부대·정부기관 등에 배포했다. 이 책은 ‘교과서포럼’의 공동대표 박효종 서울대 교수를 비롯해, 운영위원인 강규형(명지대)·김영호(성신여대)·김일영(성균관대)·전상인(서울대) 교수 등이 집필했다.

194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역사를 담은 교과서 형태의 이 책에서, 저자들은 1948년 8월15일을 대한민국의 건국일로 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임시정부는 국제적 승인에 바탕을 둔 독립국가를 대표한 것이 아니었다. 현실 공간에서 대한민국을 건국한 공로는 1948년 8월 정부수립에 참여했던 인물들의 몫으로 돌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썼다. 그동안 뉴라이트 단체들이 이승만 전 대통령을 ‘건국의 아버지’로 치켜세운 것과 맥을 같이한다.

하지만 이는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밝힌 헌법 전문과 배치된다. 이용중 동국대 교수(법학)는 “헌법을 보면 대한민국의 건국 시점은 임시정부”라며 “만약 1948년 8월을 건국의 기점으로 잡을 경우 일제 강점기 독립투쟁의 역사를 전면 부정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책은 또 미국 정치제도 도입 등을 근거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사실상 모태는 미군정기(1945~48)였다”(114쪽)고 기술하고 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한국현대사)는 “국민의 의사와 상관없이 미군의 명령을 따라야 했던 군정이 민주주의의 모태라고 표현하다니 상식 이하”라고 비판했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