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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고 싶다

전나무숲, 그 평화로움에 깃들다

전나무숲, 그 평화로움에 깃들다
월정사 전나무숲에서

  
▲ 전나무길 햇살이 가지런히 내리는 전나무길
ⓒ 김선호
월정사 전나무

생각만으로 가슴이 설레는 장소가 있다. 내게 있어 월정사 전나무숲이 그렇다. 여름휴가의 끝자락을 이 아름다운 장소에서 마무리 하고 싶었다. 언제 찾아도 평화로움으로 아늑한 곳이 그곳 아닌가 싶다.

 

예전에 <강원도의 힘>이라는 영화를 보았을 때, 지루한 영화가 끝나가도록 강원도의 힘이 도대체 뭔가 싶은 의문이 있었다. 월정사를 향해가는 주변을 보면서 그 의문의 한자락이 비로소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어디까지나 나의 주관적인 느낌이었으니 그것이 홍상수 감독이 말하고자 한 '강원도의 힘'이 맞는지 확신하기 어려웠지만.

 

감자밭이 유난히 넓었다. 아직 꽃은 피지 않았으나, 여름 뙤약볕 아래서 잘 자라고 있는 초록식물들이 보이지 않은 땅 속에서 알감자를 품고 있으리란 상상이 매우 현실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주변을 둘러보면 어디든 산이 막고 있지 않은 곳이 없는데 산으로 둘러싸인 한 가운데 그렇게나 넓은 감자밭이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기 까지 했다. 이 넓은 감자밭이 강원도의 힘을 보여주는 한 장면이 아니겠는가, 싶었다.

 

  
▲ 월정사 계곡 숲이 아름다우면 물도 숲을 따라 간다
ⓒ 김선호
월정사 계곡

월정사 가는 길 주변의 드넓은 감자밭을 보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감자 한 박스 사가야 겠다는 생각을 하며 월정사로 향했다.

 

일주문에서 천왕문 사이의 전나무숲은 여전한 모습으로 우릴 맞았다. 변치 않는다는 게 얼마나 위안을 주는 일인지 비로소 월정사 전나무숲에서 안다. 다녀와서 좋았다고 침이 마르게 칭찬했던 곳이 다음에 찾아가면 처음의 모습을 그래도 간직한 장소는 흔치 않았다.

 

몇 백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도 의연하게 서 있는 전나무 숲의 가지런함을 보는 순간 마음은 가득 평화로움으로 일렁였다. 딸아이는 당장 신발부터 벗어들었다. 양쪽에 단아하고도 우람한 전나무를 거느린 길은 잘 다져진 흙길이었다. 그 길은 맨발로 걷기에 참 좋았다. 맨발로 숲을 한바퀴 돌아 나와 숲 옆구리를 끼고 도는 저 푸른 계곡물에 발을 담그면 '여름의 독'이 모두 빠져 나갈 것 같았다.

 

  
▲ 나무둥지 죽어서도 쉼터를 제공하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 김선호
나무둥지

300년 하고도 몇 십년을 더 살다가 쓰러진 나무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이 나무에게 있어 방치는오랜 세월 한 자리를 지키고 살다간 나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처럼 보였다. 쓰러진 그 자리에 그냥 둠으로 해서 나무는 또 썩어 동물들의 삶터가 되기도 하고, 우리 아이처럼 개구진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 주기도 한다.

 

나무가 쓰러지면 제일 먼저 흙속의 미생물이 달려든다고 했다. 그 미생물들이 나무가 흙 속에 섞여 들기 쉽도록 도와준다고. 나무는 미생물과 더불어 흙속에 섞여들어 기꺼이 다음 세대를 이어갈 식물의 자양분이 된다고 했다. 자양분이 될 만한 모든 부분을 흙에 돌려주고 이제 나무는 속이 텅 빈 채로 지나가는 아이들을 붙들어 세웠다.

 

'내 안에 들어와 잠시 머물다 가렴. 내 몸뚱이는 이제 형편없이 썩어내렸지만 내 고유의 향기는 아직 남아 있단다. 그것은 내 형체가 완전히 해체될때 까지 함께 남아 있을 거란다.'

 

나무는 죽어 향기를 오래 남기는 법인 모양이었다. 죽어 향기를 뿌리는 월정사 전나무는 또하나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찌는 여름의 뙤약볕 속에서도 전나무숲은 서늘함을 간직했다. 전나무 아래를 천천히 걷는 동안은 잠시 계절을 잊었다. 

 

  
▲ 물 흐르듯 전나무숲 옆구리를 끼고 흐르는 계곡에서도 평화가 절로 느껴진다
ⓒ 김선호
숲과계곡

아이들과 함께 온 젊은 부부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참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숲이 주는 아늑함이 평화로움으로 다가오는 이런 숲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일은 아름다운 일이다. 짙푸른 숲이 들려주는 생명의 메시지가 저 아이들의 발걸음마다에 실린다는 생각을 하면 괜시리 내가 행복해지는 길. 

 

월정사 주차장 주변에서 시작된 전나무숲이 일주문까지 그 거리가 생각보다 짧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좀 더 걸었으면 하는 나의 욕심에서 였다. 나와 혹은 그 숲은 사랑하는 많은 이들의 욕심이 월정사 스님들에게 가 닿았을까?

 

집에 돌아와서 다음날 신문에서 나는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일주문 앞 주변의 포장도로를 걷어낸다는 소식이었다. 시멘트 포장이 전나무 생장에 방해가 되었다고 한다. 시멘트 포장이 벗겨지고 흙길이 드러나면 아마도 월정사앞 전나무숲은 더욱 번창하리라.

 

일주문 앞에서 턴을 하고 다시 월정사를 향해 걷는다. 다시 걸어도 첨인듯 새로운 길. 새로운게 달리 없는 그저 조용한 숲인데도 그렇다. 월정사는 지금, 중창불사가 한참이었다. 경내의 약숫물도 공사중인 관계로 식수로 사용하지 말라는 경고까지 붙었다.

 

그냥 손만 적시고 대웅전 앞마당 화단가에 앉아 경내 가득 쏟아져 내리는 타는 듯한 여름볕만 구경하다 나온다. 어쩌다 지나가는 바람에 팔각구층석탑 처마 마다에 달린 풍경이 내는 맑은 종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나온다.

 

  
▲ 마냥 걷고 싶어라 어른들도 걷고 간간히 아이들도 걷는 평화로운 숲길
ⓒ 김선호
전나무숲길

이번 월정사 방문은 아무래도 전나무숲길에 만족해야 하나부다. 그래도 못내 아쉬워 상원사 까지 가보기로 한다. 단아한 흙길을 자동차로 지나기에 미안할 정도로 정갈하다. 지난 가을 이 길을 걸어 오대산을 산행했더랬다. 여름이라 산행객들도 거의 없고 오로지 숲이 품은 서늘한 기운만 가득하다.

 

어쩐일인지 상원사 주차장 앞에서 차량통행금지를 한다. 홍천의 명개리쪽으로 가려던 계획을 부득불 접어야 했지만 할 수 없다. 무슨 사정이 있겠지. 그러게, 이 길을 가려거든 걸어서 가야 했다. 숲은 깊고 아름다우며, 그 숲을 닮은 계곡은 또 얼마나 웅장하게 흘러가는 길이던가.

 

돌아와 사진을 통해 월정사 전나무 숲을 기억을 통해 다시 걸어본다. 오래된 나무 사이로 어린 나무들이 자라는 전나무숲은 더없이 자연스러웠다. '삼림욕'이라는 단어조차도 인위적일 수 있구나, 싶은 월정사 전나무숲을 거닐며 적어도 일년분의 마음의 평화를 품고 왔다고 자신한다. 전나무숲의 평화를 충전하기 위해선 내년 여름에 다시 그곳을 찾아야 하리라. 그날을 기꺼이 기다린다.

 

월정사에서 되돌아 나오는 길에 강원도 감자를 한 박스 사왔다. 밥 할 때 넣어 감자밥도 해 먹고 채 쳐서 볶아도 먹고, 쪄서도 먹고, 감자전도 해 먹어본다. 다 맛있다. 어떤 요리에도 잘 섞이는 감자의 수더분한 맛이 강원도의 맛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월정사 전나무숲의 평화로움이 담백한 강원도 감자맛에서 느껴지는 것만 같다.